제98주년을 맞는 3.1절에 포항 장기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장기출신 애국지사 엄주동 선생과 장헌문 의병장의 추모비 제막식이 열려 3.1절의 의미를 더했다.
“우리 고장이 낳은 지사의 숭고한 얼을 추모하고, 후세 교육의 본보기로 삼기위해 시민들의 뜻을 모아 이 자리에 우뚝 서게 되었다”
이날 제막식에는 이강덕 포항시장과 정석준 시의원, 종친회 및 장기면민 등 1백5십명이 참석했으며, 추모비 건립 경과보고, 제막, 비문봉독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엄주동 선생과 장헌문 의병장은 장기면 임중리와 죽정리에서 태어나,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고초를 겪으면서도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은 애국지사로, 그 업적과 뜻을 잊지 않고 기리기 위해서 장기발전연구회가 주관해 추모비를 제작했다.
애국지사 엄주동 선생은 1897년 5월 23일 영일군 장기면 임중리에서 태어나 보성중학교와 경성고보 교원양성소를 다녔다. 1915년 이우용, 최규익 등과 함께 일본인들에게 피탈당하고 있는 각종 산업을 되찾으려는 노력과 함께 국권회복 운동을 펼쳤다.
학생들에게 한국혼을 심어주는 교육으로 국권회복을 기약하고, 일제의 경제적인 침탈에서 벗어나기 위한 각종 사업을 계획하던 중 1917년 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기도 했으나 광복까지 군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일을 멈추지 않았다.
애국지사 장헌문 의병장은 1870년 장기면 죽정리에서 태어나 을미의병에 참가했으며, 을사의병이 일어나자 이듬해 5월 김재홍, 김복선 등과 거의를 결의, 3백여 명의 의병을 모아 의병장으로 추대됐다. 영일을 중심으로 경주, 죽장, 흥해, 청하 등지에서 항전했으며, 정환직(鄭煥直)과 신돌석(申乭石) 의진과 더불어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1909년 일본경찰에 체포, 10년의 징역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고 1918년 12월에 출옥한 후 1926년 1월 25일 옥고의 여독으로 56세에 사망했다. 추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축사를 통해 “애국지사 추모비 건립과 제막에 이르기 까지 장기발전연구회를 비롯한 면민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고 감사의 말을 전하면서 “추모비를 통해 애국정신을 되새기고 후대에까지 길이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당부했다.
-dailydgnews 박예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