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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조선의 명당 ‘연주패옥(連珠佩玉)’과 ‘말무덤’

전 문경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 이만유

 

(전 문경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 이만유)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은 신라 말 도선비기(道詵秘記)로 유명한 도선(道詵)에 의해 비롯되어 고려 때 크게 유행했으며 지형(地形)이나 방위(方位), 산세(山勢)·지세(地勢)·수세(水勢) 등을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에 연결하여 집터나 묏자리를 구하는 이론이다. 근래에 와서는 음양오행(陰陽五行)을 기초로 한 풍수지리학(風水地理學)으로 하늘과 땅의 자연현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여 인간으로서 바람직한 삶과 행복을 추구하는 학문으로 발전했다.

 

예부터 명당(明堂)의 유형은 다양하다. 우리가 자주 들을 수 있는 명당을 몇 가지 살펴보면, 천계(天鷄)가 알을 품고 있는 형세의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으로 보통 닭이 20여 개의 알을 품으므로 이 지형의 소응(昭應)은 받게 되면 대대로 많은 자손을 둘 수 있어 집안이 번성하고, 무리를 이끄는 위대한 호걸이 난다는 명당이 있고,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은 선녀가 금(琴)을 타고 춤추고 노래한다는 땅으로 대대로 자손이 번성하고 부자가 되며 과거급제 등 집안에 경사가 많이 생겨 잔치를 자주 연다는 명당이다.

 

쌍룡농주형(雙龍弄珠形)은 용이 여의주(如意珠)를 물고 승천하듯이 쌍용이 구슬을 가지고 희롱하니 후손들이 곧 등용되어 대관(大官)이 날 수 있는 곳이다. 그 외 자손이 모두 원만하고 고귀하며 화려한 생활을 하게 된다는 연화부수형(蓮華浮水形), 박정희 대통령을 탄생시킨 금오산(金烏山) 제왕지지(帝王之地)인 삼족오(三足烏)의 기운을 받은 금오탁시형(金烏啄屍形) 등이 있다.

 

풍수상 절대 집(양택-陽宅)을 지어서는 안 되는 3가지 집터로 살풍(殺風)을 맞을 수 있는 계곡, 삼각형 모양의 땅, 날카로운 칼날 끝이 자신을 향하고 있는 ‘충(冲) 받는 위치’는 피해야 한다고 풍수 전문가 최우식 교수는 말했다. 우리나라 대통령 관저였던 청와대(靑瓦臺) 터는 서울의 천원(天元)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북악산의 강한 살기가 압도하는 풍수지리학적으로 좋지 않은 흉지(凶地)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청와대 살았던 역대 대통령 누구도 끝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풍수지리학자들은 경복궁은 사람이 사는 땅이고 청와대는 죽은 자의 땅이라며 거기에 살면 불운하게 된다고 했다.

 

조선 8대 명당(明堂) 중 하나라는 대명당 연주패옥형(連珠佩玉形) 묫자리가 경북 문경시 동로면 적성리에 있다. 이 명당은 약포(藥圃) 정탁(鄭琢 1526∼1605) 대감과 두사충(杜師忠)과의 인연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중국 명나라 원정군사령관 이여송(李如松 1549∼1598)을 수행한 풍수 전략가 두사충이 벽제관(碧蹄館) 전투의 패전 책임을 지게 되어 참수(斬首)당하게 될 위기에 처했다. 이때 예천 출신 약포 정탁 대감의 구명(救命)으로 살게 됐다. 두사충은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신후지지(身後之地-생전에 미리 잡아두는 묏자리)를 잡아주었는데 그곳이 바로 이 연주패옥 명당 묘터이다.

 

약포 정탁 대감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삼도수군통제사 충무공 이순신이 전략상 불가피하게 조정의 출정 명령을 따르지 않았는데 그 죄로 파직당하고 한양으로 압송되어 모진 국문(鞫問)으로 반죽음 상태에서 곧 처형될 위기에 처했다. 그때 정탁 대감이 죽음을 무릅쓰고 이순신의 목숨을 구원해 달라고 청하는 ‘논구이순신차(論救李舜臣箚)’ 상소문을 선조에게 보내 죽음 직전에서 백의종군의 명을 받고 가까스로 풀려났다. 목숨을 건 정탁 대감의 직언(直言)이 이순신을 살리고 이순신은 군사 120여 명과 병선 12척뿐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고군분투하여 대승한 명량대첩으로 나라를 구했다.

 

그런 정탁 대감에게 두사충이 잡아준 연주패옥혈(連珠佩玉穴) 명당은 선녀인 옥녀가 화장하기 위해서 거울을 보며 옥구슬을 꿰어 목에 걸고 있는 형세(形勢)로 옥관자(玉寬子) 서 말, 금관자(金寬子) 서 말이 나온다는 곳이라고 한다. 즉 옥관자(玉寬子)는 조선의 왕과 왕족, 당상관인 벼슬아치가 쓰던 옥으로 만든 망건 관자이고 금관자(金貫子) 금으로 만든 관자로 정이품, 종이품의 벼슬아치가 달았는데 이런 관자를 각각 서 말씩이나 지녀 자자손손 수없이 많은 관리를 배출하고 영화를 누릴 수 있는 곳으로 놀랍고 아주 특별한 명당이다.

 

이 연주패옥혈(連珠佩玉穴) 명당이 있는 곳에 말무덤(馬塚-마총)이 하나 있다. 무송대(舞松臺)라는 큰 바위 옆에 노송 한 그루가 있고 거기에 말무덤이 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두사충이 조선 땅을 모두 살펴보고 백두산 정기를 머금고 남으로 뻗은 백두대간이 지나는 이곳에 조선의 팔대 명당(八大 名堂)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연주패옥혈을 찾아내어 자기 목숨을 구해준 약포 대감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대감의 신후지지(身後之地)를 정해주었다. 마침 대감과 가족이 한양에 있는 관계로 대감의 구종(驅從-관원을 모시고 다니던 하인)에게 묘터를 알려 주게 됐다.

 

그 후 정탁 대감이 낙향하여 자기 아들에게 두사충이 정해준 묫자리를 찾아 정확한 위치를 알아두라 하여 아들은 구종과 함께 이 무송대에 이르러 "그 명당이 어디냐?" 하고 묻자 “예, 여기서 백보지내(百步之內)에...”하며 손을 들어 위치를 가리키며 말하고자 하는데 갑자기 말이 미친 듯이 날뛰며 뒷발질하여 구종이 즉사하게 되었다. 아들이 갑자기 일어난 일에 당황하고 화가 치밀어 단칼에 말의 목을 베었다. 이렇게 하여 천하대명당(天下大明堂) 진혈(眞穴)은 세상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이 영원히 시간 속에 묻혀 버렸다. 이후 전국 지관(地官)들의 관심사가 되었으며 많은 사람이 이곳에 와서 명당자리를 찾으려 했지만, 찾지 못하고 오리무중에 싸여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일설에 의하면 어느 풍수가 진혈이라고 판단되는 곳을 매수하여 소유하고 있는데 모 그룹 재벌이 20억 원에 사겠다고 했지만, 200억 원을 달라고 해서 매매가 되지 않았다는 소문도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났건만 오늘날에도 연주패옥혈 명당을 찾는 사람들이 많고, 지금까지 진혈(眞穴)을 찾지 못한 채 말무덤 사방 백 보 안에 알게 모르게 묘를 쓰고 있다고 한다. 어느 유명 풍수지리학자께서는 여기는 백두대간의 모든 氣기 이곳에 응취(凝聚), 응결(凝結)되었기에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기가 강해서 음덕(陰德)을 많이 쌓지 못한 사람을 여기에 묘를 쓰면 오히려 해를 입을 수도 있고 비보(裨補) 또한 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정탁 대감집 말(馬)이 아직은 이 강한 기를 받아 내기에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천기누설(天機漏洩)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자기의 주인인 정탁 대감 가문(家門)의 멸문(滅門)을 막기 위해 구종이 입을 열지 못하게 하였다는 설과 구종이 자기 선대를 모시려는 욕심으로 진혈을 숨기고 딴 곳을 가리키려고 하는 나쁜 의도를 알고 죽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전설의 명당 / 이만유

 

문경 동로 갈밭골에

연주패옥(連珠佩玉) 천하 명당

 

두사충이 은혜 갚은

약포 대감 신후지지(身後之地)

 

외롭게 전설을 품고

누워있는 말무덤

 

 

백두산 정기 서린

조선 땅 최고 명혈

 

천기누설(天機漏洩) 막음인가

말 뒷발질에 사라졌네

 

무송대 육백 년 노송

너는 알리 진혈(眞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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