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일리대구경북뉴스=황지현 기자)경북 영양군(군수 오도창)이 주최하고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이 주관하는 ‘옥천 조덕린의 학문과 사상’ 학술대회가 10월 21일 오후 2시, 한국국학진흥원 대강당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이번 학술대회는 조선 후기 남인의 대표 학자이자 지조와 절의의 상징인 옥천 조덕린(玉川 趙德隣, 1658~1737)의 삶과 사상을 종합적으로 조명하고, 그가 남긴 정신을 되새기는 자리다.
‣ 조선의 지조, 300년을 넘어 오늘을 비추다
조덕린은 외가인 하회의 겸암 류운룡과 서애 류성룡의 학문적 전통을 이어받고, 갈암 이현일의 학문을 계승한 영남 남인의 거목이었다. 문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대부분 사양하고 학문과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는 나라의 혼란한 정국을 바로잡기 위해 1725년 영조에게 올린 ‘을사십조소’에서 당쟁의 폐해를 극복하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며, 민생의 고통을 덜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아울러 군신 간의 도리가 무너지고 사사로운 이익이 공의(公義)를 대신하는 현실을 깊이 탄식하며, 정치의 근본을 도덕과 예(禮)의 회복에서 찾고자 했다.
이 상소로 인해 그는 68세의 나이에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됐고, 이후에도 두 차례의 귀향과 재유배를 거듭했다. 하지만 벼슬보다 도리를, 이익보다 원칙을 좇는 그의 학문적 자세는 평생 흔들리지 않았다. 1736년 서원의 남설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린 그는 다시 탄핵을 받아 제주로 유배되던 길에 강진에서 생을 마감했다. 조덕린의 일생은 진리를 향한 학자의 소임과 공공의 책임을 지키고자 한 조선 지식인의 양심의 기록이었다.
‣가학(家學)으로 이어진 지조의 정신
조덕린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뜻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들 조희당(趙喜堂)은 세상과 거리를 두고 초당을 지어 학문을 이어갔으며, 손자 조진도(趙進道)와 그의 형제들은 조부의 신원(伸冤)에 평생을 바쳤다. 이들은 남인의 학통을 잇는 채제공(蔡濟恭), 이가환(李家煥), 정약용(丁若鏞) 등과 교유하며 조덕린의 억울함을 호소하였고, 175년이 지난 1899년에 마침내 조덕린의 복관(復官)이 이루어졌다.
그의 가문은 지역에 뿌리내린 가학 전통을 지켜내며, 학문을 통한 도의(道義)의 실천을 강조했다. 영양 주실에 세거한 한양조씨 옥천문중은 조덕린의 지조와 학문을 가문의 근본으로 삼아, 시대가 변해도 ‘곧음’의 도를 잃지 않았다. 이번 학술대회는 이러한 ‘학문으로 이어진 지조’의 맥락 속에서, 옥천 조덕린의 사유 체계와 학문적 연원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이날 학술대회에는 ▲우인수 경북대학교 명예교수(옥천 문중의 신원 노력과 가학 전통), ▲윤재환 단국대학교 교수(옥천 조덕린의 삶과 시세계), ▲이근호 충남대학교 교수(옥천 조덕린의 현실인식과 「을사십조소」의 경세론), ▲송혁기 고려대학교 교수(옥천 조덕린의 사직 상소문의 입의와 수사), ▲서근식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옥천 조덕린의 「역경의의(易經疑義)」연구) 등 다섯 명의 발표자가 참여해 조덕린의 학문과 사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한다. 또한 권진호 한국국학진흥원 한국국학연구소장이 좌장을 맡아 종합토론이 진행된다.
‣ 옥천의 정신, 오늘의 인문정신으로
이번 학술대회는 옥천 조덕린의 삶과 사상을 다각도로 분석하여, 조선 후기 도학적 전통이 현대 사회에 전하는 의미를 탐구한다.
정종섭 한국국학진흥원장은 “옥천 조덕린 선생은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학자의 본분을 지켰던 인물로, 오늘날 되새겨야 할 지성의 표상”이라며,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선생의 학문과 사상을 다시 성찰하고, 개인의 양심과 공동체의 책임이 만나는 인문정신의 길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