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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울진 성류굴에서 삼국·통일신라·조선 각석 명문 수십 개 발견

신라 시대 알 수 있는‘정원 14년’명, 화랑·조선 관료 이름도

 

(데일리대구경북뉴스=양승미 기자)= 천연기념물 제155호 ‘울진 성류굴’에서 삼국 시대부터 통일신라 시대, 조선 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각석(刻石) 명문 30여 개가 발견됐다.

 

11일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에 따르면 지난 3월 21일 울진군(군수 전찬걸) 관계자들이 성류굴 내부 종합정비계획 수립을 위해 성류굴(주굴 길이 470m)에 들어갔다가 입구에서 230여m 안쪽에 위치한 여러 개의 종유석(석주, 석순)과 암벽 등에 새겨진 명문들을 처음 발견했다.

 

동굴 안에서 명문이 발견된 사례는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로 종유석 등에는 ‘정원 14년(貞元 十四年)’이라고 새겨진 명문 3개를 포함해 구체적인 시기를 알 수 있는 명문 여러 개와 ‘임랑(林郞)’, ‘소(우, 牛)’ 등 다수의 화랑 이름들이 새겨져 있었다. 참고로, 명문이 발견된 곳은 일반인들의 접근이 제한되어 있는 곳이다.

 

울진군의 첫 발견 이후 문화재청 등 관계 전문가들이 세 차례 추가 조사를 나가 ‘신유년(辛酉年)’과 ‘경진년(庚辰年)’명 등 간지(干支), 통일신라 시대 관직명인 ‘병부사(兵府史)’, 화랑 이름인 ‘공랑(共郞)’, 승려 이름 ‘범렴(梵廉)’, 조선 시대 울진현령 ‘이복연(李復淵)’ 등 30여 개의 명문을 발견했다.

 

 

특히, ‘신유년(辛酉年)’명과 ‘경진년(庚辰年)’과 같은 간지 연대 명문은 국보 제147호 ‘울산 천전리 각석’에 새겨진 ‘을사년(乙巳年, 서기 525년, 신라)’명과 비슷한 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며, 서기 798년에 새긴 ‘정원 14년(貞元 十四年, 원성왕 14년, 통일신라)’ 명과 조선 시대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인명 등도 발견됨에 따라 삼국 시대부터 통일신라, 그 이후 조선 시대까지 여러 사람들이 오랜 시간동안 오가며 계속해서 글자들을 새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명문은 석주, 석순, 암벽 등에 오목새김(음각) 되어 있었는데, 글자 크기는 다양하며, 대부분 해서체(楷書體, 자형이 똑바른 한자 서체)로 쓰였으나, 행서(行書, 약간 흘려 쓴 한자 서체)도 일부 가미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글자들의 학술적 가치는 ▲ 첫째, 정확한 방문 시기와 방문자가 표시되었다는 것이다. ‘정원십사년 무인팔월이십오일 범렴행(貞元十四年 戊寅八月卄五日 梵廉行/정원 14년 8월 25일 범렴이 왔다 간다)’ 등에서 보이는 ‘정원 14년(貞元 十四年)’은 중국 당나라 9대 황제 덕종의 연호가 정원(785~805)인 점으로 보아 동굴 방문 시기는 서기 798년, 신라 원성왕 14년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화랑 이름인 ‘공랑(共郞)’, 승려 이름 ‘범렴(梵廉)’ 등 방문자가 새겨진 것으로 보아 이곳이 화랑들이나 승려 등이 찾아오는 유명한 명승지였으며, 수련장소로도 활용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 둘째, 서기 524년 세워진 국보 제242호 ‘울진 봉평리 신라비’에서 나타나는 해서체(楷書體, 자형이 똑바른 한자 서체)와 동일한 서체를 보이며, 성류굴에서 발견한 것 중에는 모래시계 모양의 다섯 오(⧖, 五)자도 3개나 발견되어, 서예사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 셋째, 고려 말 이곡(李穀, 1298~1351)의 동유기 (東遊記, 1349)에 처음 나오는 ‘장천(長川)’이라는 용어를 그동안은 ‘긴 하천’으로 해석해 왔었는데, 이번에 성류굴에서 ‘장천(長川)’명이 발견되면서, 울진에 있는 하천인 ‘왕피천’의 옛 이름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화재청은 한국 고대사 자료가 희소한 상황에서 이번에 확인된 다양하고 수많은 명문들은 신라의 화랑제도와 신라 정치‧사회사 연구 등을 위한 중요한 사료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다. 앞으로 각석 명문에 대한 실측과 탁본, 기록화 작업 등 전반적인 학술조사와 함께, 동굴 내 다른 각석 명문에 대한 연차별 정밀 학술 조사와 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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